아름다운 세계에 남겨진 자들.
+ 내용을 약간 추가했습니다.
2D 쿼터뷰 액션 RPG. 5시간 가량에 클리어. 다시 플레이 중.
제가 스크린샷을 2장 이상 올린다는 건 말이죠... 그래픽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래픽뿐만 아니라 총체적으로, 무슨 말을 먼저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힐 정도로 좋아하는 게임.
케일론디아의 변방에서 일하던 주인공 소년은 재앙으로 무너져 버린 세상을 맞닥뜨린다. 대지는 조각조각났고 이웃들 모두가 죽어 재가 되어 있다. 소년은 케일론디아 최후의 은신처인 배스티언으로 향해, 배스티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의문의 사내 럭스와 합류해 배스티언을 복구해 나간다. 키드는 폐허 가운데 살아남은 타민족 유라의 외교관 줄프와 케일론디아에서 자란 유라인 지아를 찾아내며, 얽혀든 두 민족의 반목과 파국에 대한 이야기를 밝혀가게 된다.
동화적인 비주얼에 비해 굉장히 어두운 이야기.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자막부터 켜 두자. 한국어 패치를 받는 것도 좋다. 스토리를 느끼지 못하고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스토리 전개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소한 행동들에 럭스의 나레이션이 덧붙는 것이 독특하다. 하다못해 그냥 설렁설렁 돌아다니거나 쓸데없이 물건을 부수고 있어도 거기에 나레이션이 붙기 때문에, 럭스가 정말로 나를 지켜보며 내 플레이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느낌. 심지어 다른 등장인물의 대사도 아주 특별한 예외를 제하면 거의 럭스가 전해주는 나레이션이다. 대사 녹음 분량이 얼마나 됐을지 궁금해질 정도.
후반부가 되면 이야기를 읊는 관조자 같은 위치였던 럭스도 스토리의 중심으로 뛰어든다. 나레이션이 그냥 게임의 분위기를 잡는 장치가 아닌 한 등장인물의 목소리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할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 정말... 처음부터 럭스가 자신을 드러냈다면 이런 충격은 없었을 것.
아트워크가 매우 아름답다. 온라인게임 <테일즈위버>의 그래픽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매우 마음에 들어할, 하나하나 그린 2D 그래픽. 대지가 조각나 공중에 떠 있다는 설정은 주인공의 움직임에 반응해 떠오르는 플랫폼의 독특한 비주얼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게임의 숙명인 '제한된 공간' 에 대한 설득력있고 매력적인 변명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 '떠 있다' 는 특징을 이용해서 게임 내내 보아 왔던 쿼터뷰의 일반적인 구성을 완전히 무너뜨린 레벨도 있다. (Point Lemaign 맵. 그래픽은 쿼터뷰지만 캐릭터는 360도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디자인이다.)
건물이나 의복의 디자인에 게임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두 나라의 문화와 기후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 케일론디아 계열 맵과 후반의 유라 계열 맵을 비교해 보면 느낌이 확 온다. 게임의 구성상 한 번 클리어한 지역은 2회차 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다시 들를 수 없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 세이브파일을 나눌 수도 없는 게임이니 마음에 드는 맵이 있다면 클리어하기 전에 관광(?)을 해 두자.
본편을 진행하다 보면 랭킹 경쟁을 위한 보스러시가 열리는데, 이쪽을 플레이하다 보면 본편 전의 네 인물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다. 메인스트림에서 풀기에는 조금 긴 뒷설정을 꿈 속 공간에서 옛날 이야기처럼 듣게 되는, 몽환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구성. 나처럼 딱히 랭킹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스토리를 듣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도전해 보게 하는 효과도 있겠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 중 이야기와 관련되지 않는 공간은 한 곳도 없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단 한 번도 무의미한 배회를 요구하지 않는다. 보스러시 레벨을 본편 전의 이야기를 전하는 프리퀄의 장으로 이용했듯, 심지어 무기를 연습하기 위한 수련장 레벨에서도 각 무기의 유래나 그 무기와 관련된 문화 등을 풀어준다.
더불어 게임 내의 퀘스트에 가까운 도전과제에도, 버프와 디버프에도 모두 제각기 이야기가 있다. 탄탄하고 섬세한 세계관은 이 게임의 모든 요소를 지탱한다. "이 요소는 스토리랑은 별 상관 없지만 시스템이니까 그냥 납득해" 라는 게임의 독선을 느낄 일이 드물다.
사운드트랙? 사면 된다. 구매하지 않으면 100% 후회를 보장. 정말로...
http://supergiantgames.bandcamp.com/ 여기서 쭉 들어보자. 개인적인 추천곡은 엔딩곡인 Setting Sail, Coming Home. 음악은 이 밴드캠프 링크에서 구매할 수도 있고, 물론 Steam 등에서 게임과 함께 DLC로도 살 수 있다. 배스티언을 알게 되고 족히 한 달은 이 OST만 듣고 또 들었다.
http://store.supergiantgames.com/collections/frontpage/products/bastion-original-sheet-music 제작사에서는 사운드트랙 중 4곡의 악보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액션 RPG 게임이면서 전투가 루즈한 것이 단점. 다양한 무기와 기술을 장착하는 재미는 쏠쏠하지만, 상황에 따른 특별한 공략법 없이 그냥 밀어붙여도 웬만큼 깰 수 있다. 물론 디버프인 우상을 활성화하면 얘기가 상당히 달라진다. 하지만 그 우상을 제대로 쓰려면 2회차 플레이가 필수. 액션의 스릴을 중시한다면 첫 플레이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우선 여유롭게 스토리를 감상하고 2~3회차를 노리자. 2회차에서 특수무기로 꽤 강한 PORTAL의 터릿이 해금되니 그것도 써볼 겸. (...)
전투로 정신이 산란한 와중에 나레이션이 나오면 다 알아듣고 넘어가기가 힘들다는 부분도 아쉽다. 놓치기 아까운 스토리이다 보니 더더욱 그렇다. '지금 이 순간 진행되는 이야기' 라는 특유의 분위기가 흐려질 위험이 있겠지만, 간단한 대화 로그 같은 것을 제공했다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더불어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신들에 대한 설정
멸망한 세계를 둘러볼 때, 재가 된 사람들
줄프와 지아 각각의 등장 장면
중반 '가 본 적 없는 곳' 의 몽환적인 연출
마지막 선택
등등.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뭘 말해도 스포일링이 돼서 원....
더 추천할 필요도 없을 만큼 유명한 게임이지만 그 극찬의 행렬에 또 하나의 추천을 덧붙여 본다. 그냥 사면 되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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